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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초의 한글 음식 조리서 '음식디미방'의 저자

정부인안동장씨 장계향

장계향

여중군자 장계향(1598~1680)

선조 31년 경북 안동 금계리에서 태어나 숙종 6년 83세를 일기로 경북 영양 석보에서 타계하였다. 만년에 셋째아들 갈암 이현일이 대학자이자 국가적 지도자에게만 부여하는 산림으로 불림을 받아서 이조판서를 지냈으므로 법전에 따라 정부인의 품계가 내려졌다.

  • 한국 최초의 한글 음식 조리서 '음식디미방'의 저자
  • 문화관광부 선정 1999년 11월 문화의 인물
  • 조선중기 문학자, 서예가, 화가, 과학자, 사회복지실천가
  • 한국화 "맹호도"와 자연과 세상을 노래한 시9편과 서간1편을 남김
  • 당대에 이미 '여중군자'라 칭송받음
  • 퇴계 이황의 학통을 이은 경당 장흥효의 무남독녀
  • 시, 서, 화에 능통했으며 맹자, 정자의 어머니 같은 인물
  • 소설가 이문열의 선대 할머니이자, 그의 소설 '선택'의 주인공

장계향 선생은 노량해전을 대미로 7년간에 걸친 대전쟁, 임진왜란이 막 끝나가던 1598년 11월, 아버지 경당 장흥효(1564~1633)와 어머니 안동 권씨 사이의 외동딸로 안동 검재(금계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학봉 김성일의 문인으로 당대 학자로 인정받았으며, 많은 제자들이 그의 집을 드나 들었다. 그러한 집안 분위기 탓일까, 어린 소녀는 사랑방을 기웃거리면서 아버지의 가르침을 곁눈으로 배웠다. 아버지는 퇴계 학풍을 이어 받은 학자답게 '몸을 삼가고', '항상 공경하는 자세'를 제자들에게 강조했다. 10세 정도 되는 나이에 <소학>과 <십구사략>을 깨쳤고, 13세가 되어서는 [백발 늙은이], [몸가짐을 조심하다], [소소한 빗소리]와 같은 주옥같은 시들을 지었다. 글씨도 곧잘 써서 그녀가 쓴 초서체 '적벽부'는 당대 서예가 정윤목이 "기풍과 필체가 호기로워 우리나라 사람의 글씨와는 다르다"고 평할 정도였다.

나이 19세 되던 1616년 영해 나랏골에 살던 재령 이씨 가문의 이시명과 결혼했다. 남편은 이미 광산 김씨와 결혼해서 1남 1녀를 둔 27세 청장년이었다. 남편과는 여덟 살 차이, 게다가 계실로 들어간 자리였으니 새색시로서는 만만찮은 환경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색시는 전부인 소생 6살배기 상일의 자식 공부를 위해 어린 상일을 남쪽으로 5리 남짓 떨어진 남경훈 선생 집으로 매일 같이 업고 다니는 열의를 보였다. 새 며느리를 지켜보던 시아버지 아함은 동리 이웃들에게 자랑스럽게 며느리 얘기를 했다. "저 어미 잃은 아이는 어미를 잃은 것이 아니고 죽은 어미가 살아 온 것이다" 이후 그녀는 6남 2녀를 낳아 모두 훌륭하게 키웠다. 태기가 있는 동안 그녀는 과일, 채소와 같은 하찮은 물건일지라도 모양과 빛깔이 온전하지 않거나 바르지 않은 것은 입에 대지 않았다. 하루는 동네잔치로 동리 이웃들이 모두 모여 기생을 부르고 음악을 베풀고, 처용무를 펼치는 일이 있었다. 마침 임신 중이던 그녀는 종일토록 머리를 숙이고 눈을 뜨지 않았다. 그 소식을 접한 친정아버지는 "너는 내게 배운 바를 저버리지 않았구나"며 탄복해 마지않았다고 한다. 그런 노력 덕택이었을까. 그녀는 전부인과 자신의 소생 7남 3녀를 모두 한결같이 훌륭한 인물로 키웠다. 그중에서도 둘째 휘일, 셋째 현일, 넷째 숭일은 경상도를 대표하는 학자로 명성을 날렸으며, 그의 손자 이은, 이재, 외손자 이상정 또한 문명이 높았다.

  • 정부인장씨 예절관과 전시관정부인장씨 예절관과 전시관
  • 정부인장씨 유적비 전경정부인장씨 유적비 전경

'음식디미방'은 나이 일흔이 넘은 장계향 선생이 자신의 지식을 집대성해 후손들을 위해 쓴 조리서이다. 평생 동안 배운 삶의 지혜들을 조리서 곳곳에 고스란히 담았다. 한문 실력이 뛰어난데도 후세들이 가까이 두고 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꼼꼼하고 바른 한글로 적었다. 소설가 이문열의 선대 할머니이자, 그의 소설 '선택'의 주인공이기도 한 장계향 선생은 인자한 어머니, 현명한 아내, 효심 가득한 딸, 자애로운 어른 등 자신의 역할에 충실했으며 1680년(숙종6년) 83세를 일기로 영양군 석보면 두들마을 내 석계고택에서 향년을 마칠 때까지 자녀 훈도에 힘을 쏟으니 재령 이씨 가문이 더욱 크게 일어나 훌륭한 학자와 명망있는 동량들이 대대로 배출 되었다. 말년에는 셋째 아들 길암 이현일이 대학자이자 국가적 지도자에게만 부여하는 산림(山林)으로 불림을 받아서 이조판서를 지냈으므로 법전에 따라 정부인의 품계를 받았으며, 이때부터 '정부인 장씨'라 불리게 되었다. 셋째 아들 현일이 한글로 번역한 「정부인 장씨 실기(實記)」에는 선생의 여러 가지 행적이 기록되어 있는데, 회임한 뒤에는 '열녀전'에 기록되어 있는 내용대로 엄격한 태교를 하였으며, 자애로움과 엄격함으로 자녀들을 가르쳤다고 한다. 또, 흉년이 들어 먹을 것이 없어 민생이 참혹할 때는 솥을 밖에 걸고 죽과 밥을 지어 사람들을 먹이기도 하였으며, 의지할 곳 없는 늙은이를 돌보고, 고아를 데려다가 가르치고 기르는 등 인덕과 명망이 자자하였다. 뿐만 아니라 친정 부모와 시가 부모를 모시고 봉양함이 극진하여 몸소 효를 실천하니 그 자식들 또한 효성이 지극하였다.

이러한 업적을 인정하여 1999년 11월 문화관광부는 자녀교육에 귀감을 보인 '위대한 어머니상'으로 여중군자 장계향 선생을 선정하였으며, 영양군에서는 두들마을 앞에서 선생의 덕을 기리는 비와 유물전시관을 건립하였다. 선생의 아버지 장흥효는 조선 중기의 대학자로, 벼슬도 마다한 채, 집 가까이 광풍정(光風亭)이라는 정자를 지어놓고 평생을 제자들과 학문을 논하며 수백 명의 제자를 길러낸 인물이다. 이러한 장흥효가 서른다섯 살 되던 해에 얻은 아이가 장계향 선생이었고, 그녀는 어렸을 때부터 자연스레 학문을 접하게 되었다. 갈암 이현일의 장계향선생의 팔십 평생을 기록해 놓은 책,「정부인 장씨 실기(實記)」에 의하면 그는 당시 성인군자의 입문 서인[소학]은 물론, 유가의 기본적 경전인 사서오경, 세상 돌아가는 실제를 알기 위한 중국역사서 [십구사략]에서 소강절의 난해한 천문도수 학문 '원회운세지수'까지 제대로 이해하였다고 한다. 지금까지 전해지는 초서, 그림, 자수 등의 작품을 보면 어려서부터 총명했던 장계향 선생의 높은 수준을 짐작할 수 있다.

업적
  • 10남매를 출중하게 성장시키고 실의에 빠진 부군 석계 이시명을 일으켜 세운 대표적인 현모양처
  • 빼어난 시 9수를 남긴 시인
  • 사나운 호랑이를 섬세하게 표현한 '맹호도'와 산수화를 남긴 화가
  • 당대의 초서 대가 정윤목의 절찬을 받은 서예가
  • 재주보다 선행을 강조하여 이조판서로 국록을 받은 3남 이현일 등 일곱 아들을 7룡으로 불리우게 양육한 교육자
  • 퇴계학파의 적통인 아버지 경당 장흥효의 영향과 시아버지 이함 및 부군 이시명의 학연속에 수기안인(修己安人)의 길을 모색한 사상가
  • 조선 중기 4대 전화(戰禍, 임진왜란, 정유재란, 정묘호란, 병자호란) 속에서 민초들을 구휼한 사회사업가
  • 아시아에서 여성이 저술한 가장 오래된 조리서이자 한글로 기록된 최초의 요리서인「음식디미방」(1672)을 쓴 과학자

문학의 고장, 전통이 살아 숨쉬는 유서깊은 언덕 위의 마을

두들마을

두들마을은 조선시대 광제원(廣濟院)이 있던 곳으로 '두들에 위치한 원이 있던 마을'이라고 하여 원두들, 원리라 부른다. 1640년(인종18년) 석계 이시명 선생이 병자호란의 국치를 부끄럽게 여겨 이곳으로 들어와 개척한 이후로 석계의 아들 중 넷째 숭일이 계속 선업(先業)을 이었는데, 방후손들이 더해져 재령 이씨(載寧 李氏) 집성촌이 되었다. 마을 옆 둔덕에는 석계 선생의 서당인 석천서당과 석계고택이 남아 있으며, 마을 앞으로 흐르는 화매천 가에 서 있는 암석들에는 석계선생의 넷째 아들인 항재 이숭일이 새겼다는 낙기대, 세심대 등의 글씨가 아직도 남아 있다. 최근들어 음식디미방체험관, 정부인 장씨 유적비와 예절관, 음식디미방 교육관, 전시관, 광산문학연구소, 북카페 등이 건립되어 운영되고 있다.

  • 석계고택석계고택
  • 광산문학연구소광산문학연구소
  • 북카페-두들책사랑북카페-두들책사랑

정부인안동장씨와 두들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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